사회초년생, 원룸 싸다고 덥석 계약? 건축물대장서 불법개조 여부 꼭 확인 

 지난 6월 말 경기도 수원시 원천동의 한 고시원이 14억8750만원에 낙찰됐다.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이라고 적혀 있음에도 감정가(17억2371만원)의 86%라는 나쁘지 않은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2, 3위의 응찰가가 각각 14억5000만원, 13억288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 물건이 고시원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거제도에 소재한 직원용 기숙사 4개 호실이 모두 6번 유찰이라는 진통 끝에 올해 5월 초 감정가의 26%에 겨우 낙찰됐다. 위반건축물로 적발되지도 않았고, 개별 호실의 면적도 수원의 고시원보다 훨씬 넓지만 낙찰가율에 있어서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고시원과 같은 용도로 구분되는 기숙사라고 하기에 무색할 정도다.

수원시 원천동 고시원의 길 건너편에 소재한 또 다른 고시원 역시 위반건축물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음에도 7월 중순 감정가의 87%에 낙찰됐다. 경쟁률은 5대1이었다. 같은 동네, 위반건축물, 낙찰가율 외에도 수원 두 고시원의 공통점은 또 있다. 일반적으로 떠올리게 마련인 칙칙한 고시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이름과 외관이 그것이다. 영어로 된 건물명과 주차장까지 갖춘 외관만 보면 고시원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건축물대장상의 용도가 `고시원`임에도 있어 보이는 영어로 이름을 지은 것은 건물주가 유학파여서가 아니다. 고시원을 원룸으로 불법 용도변경한 뒤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원룸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대학교가 가깝지도 않고, 학원 밀집지역도 아닌 원천동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고시원을 지어 원룸으로 불법 용도변경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궁금증은 고시원 코앞에 국내 굴지의 그룹 계열사 사업장이 다수 있다는 점을 알면 어느 정도 풀린다. 사업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임대 수요가 탄탄하다보니 위반건축물 벌금에는 크게 개의치 않고 고시원을 원룸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실제 수원 원천동과 망포동, 매탄동 일대 적지 않은 고시원들이 위반건축물로 이행강제금을 부과 받고 있다. 예상대로 이들 위반건축물의 대부분은 모던000 `블루0 스카이000등 영어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건물주 입장에서는 원룸보다는 고시원으로 등록하는 게 건축기준이나 규제 면에서 이익이라는 점까지 알게 되면 마지막 퍼즐도 풀린다. 고시원은 독서실과 마찬가지로 2종 근린생활시설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주거시설인 원룸에 비해 주차장, 소방시설 등의 건축기준이 낮아 건축비용을 줄일 수 있다. 특히 고시원이 신축 후 공사비에 대한 부가세를 환급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떨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주거시설인 듯 주거시설 아닌` 고시원의 이런 특징은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원룸 선호 현상과 건물주의 욕심이 맞물려 각종 사회문제의 진앙으로 고시원을 변모시켰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안타까운 고시원 화재는 용도변경을 통해 취사가 가능하도록 개조한 것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매년 방 구하기 전쟁이 벌어지는 대학가 주변에는 아예 `고시원 주의보`가 내려진 곳도 상당수다. 경상남도 진주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방을 구하는 대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전화 건축물대장 확인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해당 건물명과 호실을 불러주면 불법으로 용도를 변경해 위반건축물로 등재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싸고 편리한 방을 찾는 데만 몰두해 건축물대장이란 게 있는지도 모르는 학생들 피해를 조금이나마 방지하기 위해서다. 진주시 건축과는 아예 경상대 등 관내 대학교 안에 `원룸 계약 전 건축물 대장 확인하세요!`라고 적힌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20년 넘게 근절되지 않고 있는 고시원의 불법 용도변경은 특히 사회 경험과 부동산 지식이 일천한 사회초년생들에게 큰 좌절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