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목적물 화재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의 입증책임 문제

임대차의 목적물인 건물에서 불이 났다. 이 경우 당연히 먼저 인명피해 여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겠고, 인명피해가 없다면 정말 다행일 것이다. 인명피해가 없다는 것은 다행이나, 화재로 인한 재산상의 피해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대법원은 종래 화재 발생의 원인지를 지배⋅관리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기준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함에 있어서의 입증책임과 그 책임을 부담하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여왔다.

위 법리를 바탕으로 대법원은 나아가 “임차인이 임대인 소유 건물의 일부를 임차하여 사용⋅수익하던 중 임차 건물 부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임차 외 건물 부분까지 불에 타 그로 인해 임대인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건물의 규모와 구조로 볼 때 그 건물 중 임차 건물 부분과 그 밖의 부분이 상호 유지⋅존립함에 있어서 구조상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는 관계에 있다면, 임차인은 임차 건물의 보존에 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였음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임차 건물 부분에 한하지 아니하고 그 건물의 유지⋅존립과 불가분의 일체 관계에 있는 임차 외 건물 부분이 소훼되어 임대인이 입게 된 손해도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로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며 임차 건물 부분과 상호 유지⋅존립함에 있어서 구조상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는 관계에 있는 곳에 임차인의 지배・관리 영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말미암은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임차인이 임차 건물의 보존에 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였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임차인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1986. 10. 28. 선고 86다카1066 판결, 대법원 1992. 9. 22. 선고 92다16652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임차 외 건물 부분이 구조상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는 관계에 있는 부분이라 하더라도, 그 부분에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임대인이 임차인을 상대로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하는 배상을 구하려면, 임차인이 보존·관리의무를 위반하여 화재가 발생한 원인을 제공하는 등 화재 발생과 관련된 임차인의 계약상 의무 위반이 있었고, 그러한 의무 위반과 임차 외 건물 부분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며, 임차 외 건물 부분의 손해가 의무 위반에 따라 민법 제393조에 의하여 배상하여야 할 손해의 범위 내에 있다는 점에 대하여 임대인이 주장·증명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며 임차 외 건물 부분의 손해를 청구하기 위하여는 임차인의 보존・관리 의무의 위반에 관한 입증책임을 임대인이 지는 것으로 견해를 변경하였다{대법원 2017. 5. 18. 선고 2012다86895(본소), 2012다86901(반소) 전원합의체 판결}.

위 견해 변경에 따라 임대차 목적물 화재와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은 매우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건물의 한 호수를 임차하였는데, 그 곳에서 발생한 화재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불이 임대차 목적물 외 건물의 다른 부분까지 번진 경우, 임차인은 자신이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였다는 것을 입증해야하고, 임대인 역시 임차인이 보존·관리의무를 위반한 점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화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다.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가장 중요하겠고, 인명피해가 없는 것이 우선이겠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불시의 사고는 피할 수 없는바, 만약 임대차 목적물에 대한 화재가 발생한 경우 위 법리를 고려하여 현명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