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해설

사실 있어서는 안 되고, 요즘같이 전세가가 매매가와 비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 간혹 임대인이나 소유자가 임차 부동산을 가지고 수월하게 대출을 받기 위하여 임차인에게 잠시만 전출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임차인은 아무래도 을의 입장에 있기도 하고, 실제로 이사를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니니 그 정도 부탁은 들어주자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랬다가는 기껏 갖추었던 대항력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어 보증금을 날릴 수도 있으니 매우 주의해야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의 대항력은 주민등록과 주택의 인도라는 대항요건을 모두 갖춘 시점에 발생한다. 나아가 이는 한 번 갖춘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존속하고 있어야 하는 요건이다. 따라서 임차인이 대항력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부탁을 받아서 전출신고를 한다면 기존에 갖춘 대항력은 상실하고, 이후에 재전입을 한 때 새로운 대항력을 취득하는 것이다.

만약 그 사이에 선순위 담보권이 설정되었다면 임차인은 선순위 담보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대항력을 갖춘 상황에서 전출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상황을 충분히 인지한 후에 해야 한다.

법원 판단

피고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매각대금 중 피고에게 임차보증금 70,000,000원을 배분하였으나 낙찰인인 원고의 명도확인서 없이는 위 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절하여 피고가 아직까지 이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임차보증금을 실제로 지급받기 전까지는 위 부동산을 명도할 의무가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므로 살피건대, 갑 제1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소외 00주식회사가 1999. 5. 12. 채권최고액을 68,900,000원, 채무자를 이 사건 부동산의 소유자 이0호로 하여 최선순위로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치고, 다시 1999. 7. 9. 채권최고액을 9,100,000원, 채무자를 이0호로 하여 2번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한편 피고가 1998. 1. 14. 이 사건 부동산을 이0호로부터 임차하고 이를 명도받아 주민등록 전입신고까지 마친 후 계속 거주하다가, 00생명 주식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주민등록을 잠시만 이전해 달라는 이0호의 부탁을 받고 1999. 5. 11. 다른 곳으로 전출신고를 하였다가 1999. 7. 19. 이 사건 부동산으로 다시 전입신고한 사실은 피고가 자인하고 있는바, 피고가 주민등록을 전출하였다가 재전입신고를 마친 이상 피고가 당초에 취득했던 대항력은 소멸하고, 피고의 대항력은 재전입시점인 1999. 7. 19.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인데, 1순위 근저당권자인 xx생명 주식회사의 근저당권설정등기일이 피고의 재전입일에 앞서는 이상, 피고의 임차권은 이 사건 부동산의 낙찰로써 소멸되어, 낙찰인은 임차보증금 반환의무의 부담 없는 상태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되므로, 피고가 매각대금에서 임차보증금의 배당을 받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낙찰인에 대하여 임차보증금의 동시이행항변을 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