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도만 생각합니다.

법무법인 명도의 강미진 변호사입니다.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임대차계약의 갱신을 거절해 놓고 실제로는 제3자에게 집을 “매도”했다면, 이때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을까요? 2023. 2. 15.자 칼럼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좀 다른 사례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임대인이 실거주 목적으로 기존 임차인에게 계약갱신 거절을 통보해놓고 이후 다른 임차인과 새 임대차 계약을 맺었더라도 “기존 임차인이 계약갱신 요구 자체를 하지 않은 경우”, 이때도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을까요?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먼저 계약갱신 거절 의사를 밝혔고, 임차인은 이러한 임대인의 말을 믿고 별도로 계약갱신 요구를 하지 않은 채 퇴거하였는데, 이후 알아보니 임대인이 실거주하지 않고 제3자에게 집을 임대했던 그런 사례입니다.

의정부지방법원 2021나223406 판결에 따르면, 임차인이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5항에 따라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 이내에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을요구”하였어야 합니다. 즉, 임차인이 계약갱신 요구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 임대인이 실거주 목적으로 계약갱신 거절 통보 후 실제로는 실거주하지 않고 제3자에게 임대하였더라도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위 판례는 “임대인이 고의 내지 과실로 마치 임대차계약을 갱신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처럼 말하여 임차인으로 하여금 임대차계약에 대한 갱신요구권 행사기회를 상실하게 하였고, 임대인의 이와 같은 행위는 임차인에 대한 관계에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임대인은 민법 제750조에 따라 임차인에게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법원은 임대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법적 근거를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5항 손해배상책임’이 아닌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책임’으로 판단했습니다.

임대인에게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을 묻기 위해 임차인은 ‘구체적인 손해액’을 입증해야만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위 판례는 “구체적인 손해의 액수를 입증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곤란한 경우, 법원은 증거조사의 결과와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밝혀진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재산적 손해가 발생하게 된 경위, 손해의 성격, 손해가 발생한 이후의 제반 정황 등의 관련된 모든 간접사실들을 종합하여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의 범위인 수액을 판단할 수 있다.”라고 하였고, 나아가,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 제1항에 따른 갱신요구권 행사기회의 상실이라고 할 것인바, 그 구체적인 손해의 액수를 입증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곤란하다고 보인다.”라고 판단한 후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임대인에게 9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하였습니다.

임대인의 실거주 주장이 명백히 허위임에도 불구하고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책임 성립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임대인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인한다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보호하고 있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이 형해화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임대인에게 ‘일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고, 나아가 임차인에게 손해액의 입증책임도 경감한 위 판례의 내용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