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과 강행규정

명도만 생각합니다.

법무법인 명도, 정민경변호사입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은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법률행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고, 이제는 많은 임대인과 임차인들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고려하여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임대인과 임차인이 계약기간, 갱신요구권, 묵시적 갱신, 권리금회수기회권, 3기의 차임연체, 보증금과 차임의 증액 등 임대차계약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내용이 ‘당연히 적용’된다고 여기는 것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5조 때문입니다.

제15조(강행규정)

이 법의 규정에 위반된 약정으로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효력이 없다. [전문개정 2009. 1. 30.]

  본래 계약은 당사자 간의 의사 합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법률이 아니라 의사가 중요합니다. 민법 제105조는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법령 중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그 의사에 의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는 법률 규정이 임의규정임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제105조(임의규정) 

법률행위의 당사자가 법령 중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그 의사에 의한다.

 강행규정은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률에 위반하는 경우 효력이 없도록 정한 것인데, 이는 ‘계약’의 관점에서는 매우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임대차계약’에 관한 법률로 ‘계약’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계약기간, 보증금과 차임, 해지 등 임대차계약의 핵심 내용을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률로 제한하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민법에 따르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도 임의규정으로 당사자 간의 의사 합치로 이와 다른 내용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으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제15조에서 이 법의 규정에 위반된 약정으로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효력이 없다고 정함으로써 강행규정의 성격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5조는 임차인에게 불리할 것을 전제로 하는 편면적 강행규정으로 임대인에게 불리한 것은 유효하고 임차인에게 유리한 것 또한 유효합니다. 그렇다면 임차인에게 유리한지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가 문제되게 됩니다. 이에 대해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우리 대법원은 임차인 등에게 불리한 약정인지의 여부는 우선 당해 계약의 조건 자체에 의하여 가려져야 하지만 계약체결의 경위와 제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임차인 등에게 불리하다고 볼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수 있을 때에는 위 강행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1992. 4. 14. 선고 91다36130 판결 참조)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건물명도등

[대법원 1992. 4. 14., 선고, 91다36130, 판결] 

【판시사항】

가. 민법 제643조 소정의 임차인의 매수청구권에 관한 규정에 위반하는 약정으로서 임차인 등에게 불리한 것인지의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

나. 형식상 임차인이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전임차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점 등 임대차계약체결의 경위와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건물매수청구권의 포기약정이 임차인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은 아니라고 한 사례

【판결요지】

가. 임차인의 매수청구권에 관한 민법 제643조의 규정은 강행규정이므로 이 규정에 위반하는 약정으로서 임차인이나 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그 효력이 없는바, 임차인 등에게 불리한 약정인지의 여부는 우선 당해 계약의 조건 자체에 의하여 가려져야 하지만 계약체결의 경위와 제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임차인 등에게 불리하다고 볼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수 있을 때에는 위 강행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 전임차인인 갑이 그 임차권을 을에게 무단양도하여 임대차계약이 해지됨으로써 갑은 물론 을도 임대차계약 만료시의 건물매수청구권을 주장할 여지가 없게 되었고 당장 지상건물을 철거하여 임차토지를 임대인에게 반환하여야 할 처지였으므로, 임대인이 을의 간청을 받아들여 을과 사이에 기간을 3년으로 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임대차기간 만료시에 지상건물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한 것은 임대인이 전임차인과의 임대차 종료시에 행사하려던 건물의 철거와 토지인도를 을의 이익을 위하여 3년 간 유예하고 그 동안 임차토지를 더 사용수익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을은 형식상 새로운 임차인이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전임차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과 다를바 없는 점 등 임대차계약체결의 경위와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건물매수청구권의 포기약정이 임차인에게 반드시 불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고 한 사례.

  즉, 종합적인 사정을 살펴 임차인의 유·불리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인데요, 문제는 재판상 화해나 조정절차에서 많은 법원이 종합적인 사정인 아닌 문언을 중심으로 화해나 조정절차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차인이 더 이상 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시점에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하고 명도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임차인은 권리금을 회수하고 나가는 대신 더 영업을 하고 싶다며 몇 년 더 영업을 하되 권리금회수기회권을 포기하기로 임대인과 합의한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법원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 4가 정하는 권리금회수기회에 관한 권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화해나 조정을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곤 합니다. 위 규정은 강행규정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요, 강행규정의 근거가 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5조를 보더라도 임차인에게 불리한 경우에만 효력이 없는 것이어서 이런 판단을 하기에 앞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합의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획일적인 판단은 당사자 간의 합의 가능성을 낮추는 것은 물론 본질적으로, 일회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조정절차나 민사소송의 목적에도 크게 반하는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강화로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갈등이 증가하고 있는 측면이 있는데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어떤 형태든지 임차인에게 불리하지 않은 조건이 제시되고 임차인 또한 이에 충분히 동의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원만한 분쟁의 해결인 것이고, 나아가 계약자유의 원칙과 임차인보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해결책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