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채무와 상계-검토의 견편
(서울동부지방법원 2017. 12. 7. 선고 2017가단101455 판결)

  법무법인 명도, 정민경변호사입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집행하지 아니하기로 약정한 채권과의 상계에 관한 판례의 사실관계를 살펴보았는데요, 일명 자연채무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에 앞서 이 사건에서 별소로 다투고 있던 ‘청구이의’에 관하여 먼저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1. 청구에 관한 이의의 소
 민사집행법 제44조는 청구에 관한 이의의 소, 일명 ‘청구이의의 소’에 관하여 정하고 있는데요, 채무자가 판결에 따라 확정된 청구에 관하여 이의하려면 제1심 판결법원에 청구에 관한 이의의 소를 제기하여야 하고, 이의는 그 이유가 변론이 종결된 뒤(변론 없이 한 판결의 경우 선고된 뒤)에 생긴 것이어야 합니다.

  즉, 청구이의의 소는 판결이 있은 후 변론 종결(변론 없이 한 판결의 경우에는 선고) 이후에 발생한 새로운 사유에 의해 그 청구가 잘못되었다는 소송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청구이의의 소의 원고는 채무자, 피고는 채권자가 됩니다.

  이 사건에서 임차인의 채권자인 丙은 乙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고, 위 판결이 확정된 후 丙와 乙은 위 판결을 집행하지 않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후 丙은 甲에게 위 판결문 채권(B채권)을 양도한 것입니다.  부집행의 합의는 실체상의 청구의 실현에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사법상의 채권계약이라고 봄이 상당하고 이것에 위반하는 집행은 실체상 부당한 집행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청구이의의 사유가 된다(대법원 1996. 7. 26. 선고 95다19072 판결 참조)는 것이 우리 법원의 입장입니다.  따라서 판결선고 후 부집행 합의를 하는 경우, 이는 청구이의의 대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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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건 청구이의의 경우 부집행 합의 시기에 대한 다툼이 있어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1심 판결 선고를 전제로 우리 이야기의 쟁점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자연채무
  자연채무는 ‘소구할 수 없는 채권’입니다.   본래 채권자는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 법원에 소를 제기하여 집행하는 방법으로 그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데, 자연채무는 이와 같이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없는 채무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합의인 ‘부제소합의’를 한 경우, 승소판결을 받은 후 채권자가 소를 취하한 경우, 파산･화해 등 각 절차에서 면제된 채무 등이 그 예입니다.  다만, 자연채무라고 하더라도 채무자가 임의로 이행하는 경우 그 이행은 유효하게 되어 부당이득 등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자연채무와 구분되는 개념이 ‘책임 없는 채무’라 불리는 것입니다. 책임 없는 채무는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채무자가 임의로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 위 판결에 기해 집행할 수는 없는 채무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 사실 자연채무라기 보다는 ‘책임 없는 채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물론, 책임 없는 채무도 자연채무와 동일하게 채무자가 임의로 이행하는 경우 그 이행은 유효합니다.
 
3. 자연채무 또는 책임 없는 채무의 상계
 자연채무나 책임 없는 채무의 핵심은 ‘여전히 채무가 존재한다’라는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판례도 본안에 대한 종국판결이 있은 후 소를 취하한 자는 동일한 소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실체법상의 권리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1969. 4. 22. 선고 68다1722 판결).

  자연채무든지 책임 없는 채무든지 채무는 존재하지만 이에 대해 소를 제기하지 못하거나 그 이행을 강제할 수 없을 뿐, 채무 자체가 소멸한 것은 아니므로 이를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가 가능하다할 것입니다. 이는 ‘공평’의 관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타당한 해석이라 봅니다.
 
4. 사건의 검토
  이 사건에서 丙의 행위가 형사상 처벌받을 수 있는 행동인지 여부를 별론으로 하더라도, 乙이 청구이의 사건에서 승소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B채권은 자연채무 또는 책임 없는 채무에 해당하게 되고, 그 채무가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닌 이상 B채권을 자동채권으로 한 상계가 가능하므로 乙이 제기한 청구이의 사건은 실질적으로 의미 없는 사건이 되었다할 것입니다.  이 사건은 현재 乙이 항소하여 항소심에서 다시 한 번 다루어질 예정인바, 그 추이를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