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의 불법점유와 부가가치세의 부담_검토의견편(1)

(대법원 2002. 11. 22. 선고 2002다38828 판결)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명도  정민경변호사입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임대차계약이 해지된 후 점유하는 임차인에게 부가세를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의 판례를 살펴보았는데, 동 판례의 쟁점에 관하여 사견을 곁들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 

​

1. 부가가치세법 제31조의 성격 
   부가가치세법 제31조는 사업자가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는 경우에는 제29조제1항에 따른 공급가액(해당 과세기간에 공급한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가액을 합한 금액)에 제30조에 따른 세율(10퍼센트)을 적용하여 계산한 부가가치세를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받는 자로부터 징수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공급하는 자’가 ‘공급받는 자’로부터 ‘징수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에 관하여 훈시규정이라는 견해와 권리의무라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다소 어렵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훈시규정설은 세법의 특성상 국가가 아닌 사인이 다른 사인에게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다만 부가가치세를 징수하는 방법에 의해 발생하는 필연적인 현상을 주의적・선언적으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이고, 권리의무설은 공급자가 스스로 불이익을 입지 않도록 거래상대방에 대한 거래징수권을 인정하는 규정이라는 견해입니다.
  이는 부가가치세가 모든 재화 또는 용역의 소비행위에 대하여 부과되는 조세이고, 본래 부가가치세는 최종소비자로부터 징수해야 하나 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전 단계 사업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방법으로 징수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 우리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부가가치세를 사실상 누가 부담하며 어떻게 전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적 자치가 허용되는 영역이므로 거래당사자의 약정 또는 거래관행 등에 의하여 그 부담이 결정될 사항이지, 국가와 납세의무자와의 권리의무관계를 규율하는 조세법에 따라 결정되는 사항은 아니라고 판시함으로써 훈시규정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대법원 1999. 11. 12. 선고 99다33984 판결, 헌법재판소 2000. 3. 30. 선고 98헌바7 결정 등).
  따라서 우리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해석에 따르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부가가치세를 징수할 권리,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부가가치세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약정에 따라 그 부담의무자가 결정됩니다.

2. 손해배상금 또는 부당이득금에 대한 부가가치세 부담여부
  판례는 손해배상금을 지급받은 것은 부가가치세의 과세대상인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에 해당하지 아니함을 명백히 하고 있고(대법원 2008. 6. 12. 선고 2008다19720 판결), 관련 예규도 동일하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당이득금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이 사건 판례의 경우 임대인의 해지통고로 건물 임대차계약이 해지되어 임차인의 점유가 불법점유가 된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이 건물을 명도하지 아니하고 계속 사용하고 있고 임대인 또한, 임대보증금을 반환하지 아니하고 보유하고 있으면서 향후 월임료 상당액을 보증금에서 공제하는 관계에 있다면, 이는 부가가치세의 과세대상인 용역의 공급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판시한 대법원 1995. 7. 14. 선고 95누4018 판결을 인용하면서 임대차계약 해지 후의 계속점유를 원인으로 차임 상당액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는 경우에 종전 임대차에서 약정 차임에 대한 부가가치세 상당액을 공급을 받는 자인 임차인이 부담하기로 하는 약정이 있었다면,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당이득으로 지급되는 차임 상당액에 대한 부가가치세 상당액도 계속 점유하는 임차인이 부담하여야 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임대인인 丙이 乙에게 ‘부당이득’이 아닌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면 乙에게는 월차임상당의 손해배상금의 지급의무가 발생함에 따라 부가가치세를 부담할 의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3. 검토의견
  이 사건 판례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순됩니다.
  첫 번째, 임대차계약이 해지되어 불법점유 하는 임차인과의 관계에서 임대차에 관한 약정은 없으나 부가가치세 부담에 관한 약정 존재한다는 모순이 있습니다.
  임대차계약이 해지된 이상 부가가치세 부담에 관한 약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부가가치세법 제31조를 훈시규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보니 부가가치세의 부담약정이 묵시적으로 잔존한다는 무리한 해석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부가가치세법 제31조를 권리의무로 해석한다면 임대인과 임차인 간에 약정이 없더라도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부가가치세를 지급할 의무가 있으므로 ‘불법점유’하는 임차인에게 부가가치세의 부담의무가 인정될 것입니다).
  두 번째, 임대인이 부당이득을 주장하는지 손해배상을 주장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모순이 있습니다.
  요건은 다르지만 부당이득금 또한 ‘손해’를 전제로 하므로 부가가치세 부과에 있어서 손해배상금과 달리 해석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임대인 입장에서 임차인이 불법점유 하는 경우 부가가치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하면 다소 억울하다는 생각이들 수 있으나, 현실에서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경우 부가가치세 신고를 하지 않고, 실제로도 손해배상금이든 부당이득금이든 산정된 금액에 대해서 부가가치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면 임대인에게 특별히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굳이 임차인에게 부가가치세를 부담시킬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